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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의료"... 박건우 교수가 말하는 초고령사회 통합돌봄의 미래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노년층의 삶의 질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만성질환으로 병원을 찾기 어려운 환자가 늘면서, 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의료와 지속적인 돌봄 체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택의료가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의료 대안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7월 10일 열린 종합학술대회 현장에서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을 만났다. 이날 「통합돌봄 시대에서 정보의 비대칭성과 환자의 알 권리」를 주제로 발표한 박 이사장은 "재택의료가 단순히 병원 밖에서 이뤄지는 진료를 넘어, 환자의 삶 속으로 의료가 확장되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강연 직후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초고령사회 통합돌봄이 나아갈 방향과 그 안에서 재택의료가 맡아야 할 역할을 들어보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통합돌봄 시대에서 정보의 비대칭성과 환자의 알 권리'를 주제로 강연하셨습니다. 의료가 병원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변화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병원 중심의 의료 시스템이 의학 발전과 국민 생명 연장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아프지만 오래 사는' 또 다른 과제를 남겼습니다. 이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른바 '의료 난민'이 늘고 있습니다. 장기요양 1·2등급 인정자만 해도 이미 100만 명이 훌쩍 넘습니다.
기존의 급성기 치료나 간헐적 내원 중심 모델로는 이들의 복합적 요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노인과 치매 환자가 평생 살아오던 익숙한 가정과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을 누리는 'aip(aging in place)' 실현이 시대적 요구입니다. 병원에 오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의사가 직접 찾아가는, 분절되지 않은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실제로 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의료는 환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나요?
데이터가 그 긍정적인 효과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분석 결과,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참여하는 다학제 협력 진료가 응급실 이용률을 낮추고 평균 장기 입원일수를 45% 이상 줄였습니다. 이는 국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서적 회복과 고독사 예방 효과입니다. 다리가 부러져 퇴원한 독거노인은 집에서 극심한 무가치함(worthlessness)과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때 의사와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가치를 인정해 주고, 식사 등 복지 시스템을 연계해 주며 희망을 이야기하면, 고독사로 향하던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찾아가는 의료는 단순한 진료를 넘어 생의 의지를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강연에서 이러한 정보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돌봄 리터러시(care literacy)'를 제안하셨습니다. 기존의 개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존의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가 단순한 질병 정보 판독 능력이었다면, '돌봄 리터러시'는 환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의 보건·요양·복지 자원을 스스로 탐색하고 상황에 맞는 결정을 수행하는 주체적 역량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개인의 교육 수준뿐 아니라, 시스템의 접근성을 반영하는 거시 지표라는 점입니다. 행정·의료 정보 접근이 얼마나 쉬운지를 평가하는 지역사회 보건 수준의 지표로서 함께 다뤄져야 합니다.
돌봄 리터러시를 현장에 어떻게 적용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돌봄 리터러시는 환자가 보건·요양·복지 자원을 탐색하고 결정하는 주체적 역량을 뜻합니다. 저희 학회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5가지 영역의 예비 척도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① 접근성(access): 돌봄 서비스의 정보 채널과 신청 경로를 직접 찾아내는 역량
② 이해도(understanding): 장기요양과 치매안심센터 등 혜택의 경계 식별 능력
③ 탐색·연결(navigation): 보건소와 재가의료 자원 결합 및 연계 역량
④ 의사결정(decision): 환자 상태에 맞춘 다변형 대안 자율 검토 및 판단 능력
⑤ 이용능력(utilization): 위기 발생 시 주체적인 맞춤 케어 플랜 변경 요구 능력
다만 이는 단순한 평가 지표가 아닙니다. 의료진과 실무자의 '마인드셋' 변화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전문가들이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환자가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진정한 돌봄 리터러시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국가 정책과 지역사회, 그리고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세 가지를 제언하고 싶습니다.
첫째, 환자 중심 정책 평가 지표 도입입니다.
공급 기관의 양적 확대 및 단순 예산 집행률 위주의 실적 평가에서 탈피하여, 지역 주민의 돌봄 리터러시 인지 제고율 및 이용 정보 접근 수준을 표준 평가지표로 대전환해야 합니다.
둘째, 다기관 합동 돌봄 리터러시 인덱스(cli) 타당화 연구 지원입니다.
cli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다기관 연구를 지원하고, 척도의 타당성을 검증해 향후 국가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셋째, 미디어의 솔루션 저널리즘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치매 돌봄을 가정의 파멸이나 공포 프레임에 가두지 말고, 재택의료와 지역포괄케어 등 대안적 지역사회 모델을 명확하고 친절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최근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방문요양·방문간호 등 다양한 돌봄 주체와 의료계가 앞으로 어떻게 협업해 나가야 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자체가 컨트롤타워가 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명시된 만큼, 지역의사회가 주도적으로 의료 전문가와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이 과정은 직역 간의 '밥그릇 싸움'이 결코 아닙니다. 환자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전문성을 나누는 '공동체 의식'의 형성입니다. 돌봄 리터러시라는 공통 지표를 기준으로 '나는 여기까지 책임을 지고, 다른 전문가는 저 부분을 맡는다'는 신뢰가 쌓여야 실무자들도 번아웃 없이 진정한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방문요양·방문간호 등 다양한 돌봄 주체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각 직역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방문요양센터나 재가간호기관 등 민간 돌봄 주체들 역시 의원급 의료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직역별로 전문성이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동안 의사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부족해 타 직종의 의료적 개입이 불가피했다는 논리가 생기지 않도록 의료계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진정한 상생은 각 직역이 자신의 위치에서 명확한 책임성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끝으로,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초고령사회의 변화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나와 가족이 마주할 수 있는 노후를 생각한다면, 의료 역시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오는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의 삶 속으로 찾아가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의료진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환자 중심의 재택의료와 통합돌봄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 함께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돌봄을 특정 환자나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미래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의료는 환자에게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것을 넘어, 의사가 환자의 삶 속으로 '가는 의료',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의료'로 변화해야 합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김택우)는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서울 강남구 소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2026년 제43차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의사의 전문성으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의료: 인공지능(ai)과 초고령화 시대를 재설계하다」를 주제로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7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회원 간 학술 교류와 소통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